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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맞춤 옷 처럼 딱 필요한 만큼의 재단을 한 앰프는 두 가지 면에서 강한 매력 포인트를 갖고 있다. 첫 째는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나의 환경을 위해 설계한 듯한 제품의 성능과 스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종 오디오파일로 하여금 무한애착의 발로를 제공해서 ‘평생 가져갈 제품’이라든가 하는 표현을 샘솟게 한다. 

두 번째, 앰프제작시에 내면과 외관에 대해 사려깊은 제품디자인을 하고 있다. 오랜 동안 한 사람 혹은 여러 오디오파일에게 사용될 것을 고려해서 지나치게 트렌디하지도 않고 어느 시대에도 어울리게 제작되어 있다. 아예 명품수준으로 최고급의 스펙을 들이대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사용자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되어 장단점이 공존하겠다. 내부의 디자인도 내구성과 퍼포먼스, 양면이 모두 고려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품 성능과 관련되어서는 전술했듯이 어느 스피커도 제압시킬 수 있을 듯한 마초기질이 아닌, 지속적으로 간헐적으로 다수의 오디오파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올타임 클래식 스타일의 사운드 품질이 필요하다. 불합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연적인 선택을 위한 설계라면 사용자 스스로 다소간의 번거로움도 수용하곤 한다.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제조철학에 대한 신뢰감이 생겨나 있다면 오디오파일들은 제조사의 디자인을 개연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사이즈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하고 있는데, 그레이-실버 톤의 상당히 고급스러운 톤의 섀시는 알루미늄 합금 가공으로 제작되어 있다. 양쪽 측면에 체리 톤 색상의 목재를 사용한 디자인은 실버톤과 혼합되어 격조높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러한 디자인은 오디오파일이 아는 범주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니슨 리서치의 앰프를 연상케 한다. 측면에 사용한 목재 또한 범상치 않은데, 사실은 체리목이 아닌 가문비나무를 사용해서 제작되었는데 이 나무는 동경의 정서방향 내륙의 ‘Hida-Takayama’ 지방에서 목재 전문 명장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하단의 앞쪽만 발을 내려 지지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본 우드패널은 디자인은 물론, 전문가공방식으로 내구성과 인슐레이팅 효과를 격상시킨 디자인이다. 서스펜션 하나에도 많은 공력이 투입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섀시 뒤쪽 하단에는 삼점 지지 방식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부분에 별도의 목재를 부착시켜 지지하고 있다. 이 후면 지지대는 측면 나무와 달리 단풍나무(메이플)를 사용하고 있다. 

몇 곡을 시청해 보면 RSA-717ex는 딱 디자인과 걸맞는 사운드품질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인한 골격과 큰 스테이징으로 위력적인 다이나믹스를 펼치는 스타일이 아니고, 대단히 미학적이고 정밀한 사운드 품질로 어필한다. 응집력과 미세한 울림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시청자를 집중하게 한다. 리모콘이 있을 것 같아 박스를 뒤져보아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옵션으로 제공되는 자사 전용의 콘트롤러인 RSR-1을 연결하면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뒷 패널 전원 인렛 옆에 있는 입력단을 통해 연결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예상했지만,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울림만 놓고 보면 튜닝이 딱 중간쯤에서 모양을 흐트리지 않도록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대역 밸런스가 어긋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듣기 좋은 보풀거리는 질감을 만들어낸다. 곡에 따라서는 스테이징이 약간 더 컸으면 싶을 때가 있는 대신, 무대 한 가운데 높은 밀도의 음상을 만들어 내는 장면은 감탄스럽다. 분명한 포커싱과 입체감으로 매력적인 음색을 띄워내는 장면은 최대의 덕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30대 시절 필자가 열광해 마지 않던 스레숄드의 음색이 고품질의 해상도로 재현되고 있다고 하면 가장 근접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줄리앙 브림이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그랜드 소나타는 단정하고 깨끗한 하모닉스의 촉감이 일품이다. 아날로그적이고 풋풋한 울림이 기타 거트의 탄력을 사실적이고 또렷한 음상으로 그려내서 매우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꽤 넓은 대역에 걸쳐서 과도하다거나 반응이 민감하다거나 하는 인상을 주지 않고 모범적인 대역 특성을 보인다. 이에 따라 각 대역에서의 반응이 바람직한 조화를 가져와서 경쾌한 풋웍과 낮은 대역에서의 분명한 드라이브가 봄나물같은 생동감을 준다.

린 레코드의 스튜디오 등급 24비트/192KHz 로 시청한 바하의 파르티타 3번에서의 홀톤 어쿠스틱은 시청한 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모닉스를 들려주었다. 유연하고 매끄러운 현의 마찰이 피부에 그대로 와 닿는 감촉이다. 시린 듯한 연주이지만 매끄러운 감촉으로 귀를 편안하게 하고 있다. 마치 오랜 시간 수작업으로 연마된 금속의 표면처럼, 직선은 직선대로 곡면은 어느 구간에서도 직선이 감지되지 않는 유연함으로 활주를 하고 있다. 고품격 음색과 하모닉스의 품질, 입체적이고 컴팩트한 음상은 실제 연주 장면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바 크다.  

한편 본 제품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Other Side’ 같은 곡에서의 열기 또한 놓치지 않는다. 성긴 느낌이나 텐션이 부족해서 이 곡의 분위기를 소극적으로 만들지 않을까 싶었던 건 주제넘은 우려였다. RSA-717ex는 장르적 편견을 표방하지 않아서 어느 곡이든 본연의 모습에 충실해 있다. 드럼과 베이스가 분명한 존재감으로 시종 곡의 기저를 흐르고 있어 역동적인 분위기를 꽤나 잘 연출한다. 거친 음색의 표현도 적절해서 존 후루시안테의 후반부 프레이징에서의 표정도 대단히 풍부하고 깊게 그려낸다.

   

 제품의 구조를 잠시 살펴보면, 전면 패널은 좌우로 배치된 아담한 사이즈의 원형 노브 - 볼륨, 셀렉터 - 를 기준으로 거의 좌우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몇 가지 다른 앰프에서 보기 힘든 부분들이 발견된다. 우선, 우측 끝에 있는 상하 토글레버식으로 되어 있는 파워스위치는 볼륨 노브와 셀렉터에 비하면 상당히 큰 사이즈로 제작되어 있는데 중앙에 턱을 두어 록킹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있어서 실수로 내리거나 올리는 일을 방지하고 있다. 이 레버를 작동시키려면 정면으로 당긴 다음 이동을 시켜야 한다. 그냥 버튼식으로 할 수도 있지만, 상기한 사고방지의 목적, 그리고 조작의 재미와 시각적인 매력을 살려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원을 올리면 좌측에 이보다 작은 토글 레버 끝에 빨간 램프가 들어오는데, 스피커로의 출력을 단락시킬 수 있는 스위치로서 파워 스위치처럼 상단으로 올리면 녹색 램프로 전환된다. 이런 스피커 출력 선택 스위치는 앰프에 사용된 사례가 기억나지 않는데, 제품의 시동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거나 안정화되는 데 까지 민감한 체킹 단계가 있어 보이지 않음에도 이런 용도로 단락을 하도록 한 설계는 독특하다. 뒷면 패널에는 3조의 RCA 입력 이외에 1조의 XLR 입력까지 지원하고 있고 스피커 단자는 좌우 한 쌍을 제공하고 있다. 

본 제품의 고혹적인 사운드품질은 전형적인 경로 및 회로의 단순화와 특주 부품의 사용으로 얻어낸 성과라 할 수 있다. 최신  SiC(실리콘 카바이드)재질의 쇼트키 다이오드(금속과 반도체를 접합시킨 정류기)를 중심으로, 전해질 커패시터, 특주 오일 커패시터, 최상급 운모 커패시터 등을 사용해서 원활한 댐핑효과, 낮은 대역의 양감, 정교하고 투명한 미드레인지, 스위칭 노이즈가 없는 고역을 얻어내도록 설계되었다. 아울러 캘리포니아 소재 ‘International Rectifier’에서 출시한 오디오 콘트롤러 IC와 MOS-FET을 사용해서 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스위칭 전원을 사용하는 관계로, 전술했듯이 제품의 중량이 가볍기도 하거니와 전원부, 입력단, 출력단 세 개의 기판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부 디자인도 매우 심플하다. MOS-FET을 사용한 클라스 D증폭 방식의 출력은 8옴에 50와트, 4옴에 100와트로 선형 증폭된다. 선형증폭 방식의 이 설계에 따른 볼륨은 얼핏 수치를 많이 먹는 것 처럼 보이는데, 거의 11시 방향을 넘어서서 일반적인 시청 음량이 되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이 즈음, 하루 종일 틀어두어도 열기라고는 느끼기 어려운 이런 제품의 매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심플하고 컴팩트한 제품이 보는 재미가 있다. 소프트 코팅을 한 듯한 은색 표면의 빛깔과 감촉 또한 청량감을 준다. 하지만 이 제품의 소리에는 시청자를 도취시킬만한 수준의 따스함이 있다. 이를 구현하느라 음악적 품질을 훼손하는 일도 없다. 감성 풍부한 소리를 심장으로 하고 있지만, 시청자에게 대단히 냉철하게 원소스를 들려주는 일을 어느 순간에서도 잊지 않는다. 빈티지 진공관 애호가들에게도 필청을 권하고 싶은 건, 음색 면에서 고전 진공관들과 일장일단을 논할만하면서 기능적으로는 우세하기 때문이다. 열도 나지 않고 오디오파일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케이블들을 고민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스피커에 따라서는 메인 시청실이나 거실에서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깔끔하게 배치되어 격조높은 공간을 만들어 주기에도 적절해 보이지만, 서재나 침실 같은 공간에서 단아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기에도 매우 이상적인 앰프이다. 필자의 취향이라면, 출시 시점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영국계 북쉘프와 역시 영국계 LP 플레이어를 연결한다면 베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포노앰프는 별매). 여름을 보내기에도 가을을 맞이하기에도 잘 어울리는 품격을 지닌 매력적인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