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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owers & Wilkins의 헤드폰 제품군은 네모반듯한 이어컵을 비롯한 일관된 디자인과 자사의 스피커 개발 노하우가 고스란히 투입된 사운드를 겸비하고 있다. 여기에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로서의 B&W 브랜드 파워가 더해져, 현재는 고급 헤드폰 시장에서 독자적인 매니아층이 형성되는 등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B&W의 50주년을 기념하며 자사의 새로운 플래그십 헤드폰인 P9 Signature를 선보였다. P9 Signature의 개발은 B&W의 현 플래그십 스피커인 800 시리즈 D3의 개발팀이 맡아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 의미에서 P9 Signature는 B&W가 1966년부터 50년간 쌓아온 사운드와 디자인에 관한 모든 노하우를 담아내었다.

“디자인”

P9 Signature의 디자인은 이전의 B&W 헤드폰들과 마찬가지로 직사각형 하우징과 심플한 하우징을 사용하여 패밀리 룩을 그대로 유지한다. 여기에 플래그십 모델로서 디테일을 상당히 많이 개선하였다. 우선 이어컵과 헤드밴드의 바깥 부분을 이탈리아의 Scabrenta 사가 제작한 사피아노 패턴 가죽을 사용하여 시각적 인상이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사피아노 가죽은 내구성과 오염에 강해서 헤드폰용 소재로 제격이기도 하다. 이어컵과 헤드밴드의 안쪽은 사피아노 패턴이 없는 양가죽을 사용하여 피부와 닿는 촉감이 부드럽다. 전체적인 컬러링도 블랙에서 브라운으로 변경되면서 가죽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특징을 잘 부각시키면서 시각적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그간 B&W의 헤드폰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기초 설계는 거의 동일하게 공유되었다. 그에 비해 P9는 음질 향상을 위해 설계가 상당 부분 변경되었다. 이어컵의 설계에는 유한요소분석 기법을 사용하여 음향적으로 최적화된 내부 설계를 가진다. 그리고 이어컵과 헤드밴드의 연결부를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러버 소재로 이루어진 서스펜션 구조가 채용되어, 이어컵이 완전히 고정된 상태에서 벗어나 유동성을 가진다. 이는 1차적으로는 헤드밴드와 이어컵을 음향적으로 분리하여 헤드밴드가 사운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이어컵이 부드럽게 머리에 밀착되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디자인적으로도 서스펜션을 감싸고 있는 가느다란 슬릿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독특하면서 고급스럽다.

헤드밴드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부분에는 샌드 브러시 마감된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이전 모델들보다 시각 및 촉각적 고급감이 한층 높아졌다. 헤드밴드를 안으로 접을 수 있게 해 주는 폴딩 기구 구조가 그 알루미늄 프레임 안에 치밀하게 숨겨져 있다. 새롭게 변경된 헤드밴드의 신축 구조는 슬라이딩 되는 부분의 고정이 견고하지 못하고 신축 시의 질감이 거칠어서 기계적인 설계는 다소 아쉬운 느낌이다.

케이블은 기존의 B&W 헤드폰들과 마찬가지로 자석식으로 탈부착되는 이어컵을 열어서 안쪽에 숨겨진 플러그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케이블의 고정이 견고하고 커넥터에 부하가 적게 걸려서 내구성에는 좋으나 잦은 케이블 교체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기본 제공 케이블은 총 3종으로 풍부하게 제공한다. 휴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짧은 길이의 일반 케이블과 AP 리모트 케이블, 그리고 거치형으로 사용하기 위한 장거리 케이블 및 6.3mm 변환 커넥터가 제공된다. 전용 파우치는 헤드밴드를 접었을 때 최적화된 모양의 반원 형상을 한 고급 알칸타라 파우치가 포함된다. 파우치의 날개에 헤드폰 본체와 동일하게 사피아노 가죽이 덧대어져 있어 헤드폰과의 디자인 일체감이 높아 특별한 느낌을 준다.

여러모로 소재의 고급화를 꾀하면서 헤드폰의 무게는 419g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B&W 헤드폰 특유의 딱딱한 이어폰 쿠션감은 P9에서도 그대로이다. 이어컵과 헤드밴드의 대형화에 따라 귀에 안착되는 안정감은 높아졌지만 착용감과 무게감 면에선 떨어진다. 헤드밴드가 폴딩되어 아웃도어에서의 휴대성은 좋지만, 인도어가 아닌 아웃도어를 주력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하위 모델들이 유리하다.

“사운드”

P9는 새롭게 설계된 40mm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스피커용 드라이버와 유사하게 서스펜션 엣지 구조를 사용해서 저음 응답성을 크게 높였다. 기존의 B&W 헤드폰에서도 사용되는 나일론 댐핑 다이어프램은 음향 코팅을 추가하여 음질 특성을 더욱 향상시켰다. 높은 전기전도성과 가벼운 무게를 양립하는 CCAW(구리 코팅 알루미늄 와이어) 보이스 코일을 중심으로 마그넷을 외부에 위치시킴으로써 더욱 대형화된 자석을 사용하여 구동력이 향상되었다.

드라이버가 고정되는 내부 프레임은 알루미늄 합금과 수지를 혼합하여 강성과 음향 특성의 양면으로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라이버의 배치를 귀에 대해 15도 기울임으로써 사운드를 한층 더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이어컵 내부 공간도 보다 여유로워졌다. 특히 귓바퀴의 끝이 헤드폰의 안쪽에 닿는 문제에서 보다 자유로워져 착용감이 좋아졌다.

P9의 사운드에 대한 첫인상은 P7에서 주파수응답 대역폭이 확장된 느낌을 우선적으로 받는다. 특히 고음 방향으로의 대역폭이 확연히 확장된 느낌으로, P7보다 고음의 반응이 한층 날카롭다. P7이 전체적으로 객관적인 성향의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P9은 어느 정도 자기 색깔을 가지고 사운드를 선명하게 강조시키는 성향이다. 이러한 성향에 의해 현악기와 피아노 등 고음 악기가 강조되는 전통적인 어쿠스틱 장르에서 악기 하나하나의 극적인 느낌이 잘 살아난다. 반면 전자음이 강조되는 현대음악 장르에서는 다소 자극적인 느낌을 준다.

저음의 응답 역시 P7의 연장선상으로, 기본적으로 잔향을 빠르게 억제하는 선명한 타격감이 강조된다. 그래서 대편성에서의 웅장함보다는 소편성에서의 디테일, 그리고 현대음악에서의 빠른 비트에 어울린다. 한편 서스펜션 구조 추가 등에 의해 P7보다 저음의 응답성이 더욱 향상되어, 초저음이 잘 기록된 음원에서는 때로는 깜짝깜짝 놀랄 정도의 묵직하면서도 빠른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고음에서의 특성과는 다르게 오히려 현대음악 장르에 보다 잘 어울린다. 고음의 자극도가 다소 늘어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음악에서는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인도어에서 들을 때에는 깊은 저음이 고음을 어느 정도 상쇄하며 밸런스를 잘 맞추어 주는 덕분이다. 물론 이는 역으로 말하면 아웃도어에서 사용하기에는 저음의 양감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기존의 P7도 그랬듯이 P9를 아웃도어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EQ의 힘을 약간 빌릴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저음 응답성이 좋으므로 EQ로 저음을 약간만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주변 소음에 묻히지 않고 풍성한 저음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 음색적 중립성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도 중저음 대역이 전반적으로 살짝 억제되어 있다. 그래서 음원의 마스터링에 약간 결점이 있더라도 듣기 좋게 살짝 꾸며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P9는 음악을 분석하기보다는 음악을 편하게 즐기고자 하는 애호가에게 제격이다. 다만 그 꾸밈의 방향성이 중고음의 강조에 치중되어 있어, 묵직함이 필요한 대편성 음악이나 남성 보컬 등에는 다소 약점을 보인다.

세부적인 몇몇 특성들을 제외하면 P7의 사운드를 이어받으면서 B&W 헤드폰 특유의 사운드를 더욱 업그레이드 한 느낌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B&W 헤드폰을 선호하던 애호가층으로부터 크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음 응답성의 향상에 힘입어 고해상도 음원의 선명한 느낌도 한층 더 잘 살려준다. 음색적으로는 모니터적인 성향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나 음장감 측면에서는 소스에 기록된 그대로를 전달하는 모니터적 성향을 겸비하고 있어 묘하게 독특한 맛도 있다.

P9의 전기적 임피던스 특성은 전 대역에 걸쳐 25Ω 수준에서 평탄한 편으로서 임피던스에 의한 매칭의 영향은 적다. 감도는 스펙 상으로는 111dB@1kHz로 높은 편이지만 실제 유선 연결 시 저출력 기기에서의 음량 확보는 미묘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유선 연결이 필요하다면 충분한 출력의 앰프나 소스기기와의 연결을 권장한다. 저출력의 휴대용 소스기기와 연결한다면 오디오퀘스트 드래곤플라이와 같은 외장 앰프를 활용하면 여유로운 구동력을 바탕으로 음질 향상의 여지가 있다.

“에필로그”

B&W은 스피커든 헤드폰이든 하나의 라인업을 시작하면 처음의 컨셉을 꾸준히 개선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우직한 모습을 주로 보여 왔다. P9 Signature는 B&W에서 그동안 개발했던 헤드폰들에서 얻은 노하우를 집대성하면서 플래그십 다운 고급감과 개성을 두루 갖춘 상징성 높은 모델이다. 특히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른 평범한 헤드폰들과 보다 차별화되는 자기 색깔을 가지면서 B&W 헤드폰 특유의 개성을 한층 강화시켰다.

“세줄요약”

1. 기존의 B&W 헤드폰들로부터 얻은 노하우를 집대성한 플래그십 오버이어 밀폐형 헤드폰

2. 폭넓은 주파수응답 대역폭과 고음을 듣기 좋게 꾸며주는 개성적인 음색을 겸비한 사운드

3. 사피아노 가죽 등 소재의 고급화와 이어컵 서스펜션 구조 등 음질적 장점을 겸비한 디자인

- 테크니컬 라이터 여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