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PC통신 동호회 시절은 수많은 이슈들의 산실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수를 위한 성과로 이어지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커뮤니티 문화가 익숙치 않던 시절의 다양한 시선 속에서 감정과 호기 가득한 자제되지 않는 메시지들은 종종 OK 목장의 결투로 확장되었고 결투의 패자는 ‘마을’에서 사라지곤 했다. 온라인상의 대중들은 익명성에 힘입어 잔인하리만치 무책임할 때가 있다. 남이 새로 산 장비에 영혼 없는 칭송을 아끼지 않다가도, 정작 그가 토론의 당사자가 되면 격투기를 구경하는 링 밖의 군중들처럼 무대 위에서 피가 터지고 드라마틱하게 쓰러질 것을 기대하며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결구도의 문화는 한 세대 가까이 지나서도 여전해서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서 세우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국내 대학교에서의 강연시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토론에 굶주려 있다’고… 민주주의의 방식에 익숙치 않은 채 급속히 발달된 자본주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그런 부조화를 달고 산다.

음악감상 중에는 미처 감지되지도 않고 무시될 수 있는 정도의 수치이지만, 역기전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강한 슬램 직후에 약음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잔여 에너지는 크게 밀려오는데 짧고 약한 파동의 주파수 신호를 이후 파동의 에너지를 향해 흘려보낼 경우, 이 약음이 얼마나 고충실도로 트위터의 코일을 흐를 지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역별로 케이블 경로를 분리시킨다는 게 바이와이어링, 멀티와이어링의 개념이고 크로스오버로 해결을 한다는 게 싱글와이어링을 고수하는 회사의 이론이다.  

스펙(SPEC)의 RSP 501EX은 이런 역기전력의 해결하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 제품이다. 제품명에서 표방하듯 주로 낮은 대역에서 발생한 역기전력을 흡수하고 신호전류와 무관하게 여전히 춤추고 있는 임피던스를 안정화시켜서 실제 소리를 들려준다(Real Sound Processor)는 데 핵심이 있다. 전술했듯이 역기전력의 현상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스피커, 어느 드라이버도 피해갈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이지만 딱히 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미처 의식되지 않거나 주로 앰프의 출력 등으로 알아서 해결해오고 있는 현상이다. 대출력이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미세한 프레젠테이션에서의 뉘앙스를 몇 가지 곡으로 테스트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본 제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점이라면 제품 자체가 작고 가볍기도 하지만, 장착방법이 단순하고 편리하다는 데 있다. 슈퍼트위터나 서브우퍼를 연결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피커의 터미널에서 점퍼선과 같은 별도의 케이블을 사용해서 점핑을 하면 된다. 사용 스피커에 따라서는 제품 상단에 올려놓아도, 바닥에 두어도 된다.

제품은 좌우 하나씩 두 개의 별도 유닛으로 구성되는데, 제품의 사이즈는 탁상용 명함 케이스만하다. 구조 또한 단순해서 이 박스의 뒷면에 스피커와 마찬가지로 한 조의 터미널이 위치한다. 전에 동사의 인티앰프 717EX를 시청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SPEC은 자사의 제품에 목재가 관여된다. 꽤 가벼운 본 제품은 평범한 월넛 마감으로 보이지만, 영국산 식물성 오일을 주입시키고 건조시키는 일을 반복해서 완성한 장인 수준의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 제품의 컨셉트 상 내구성과 함께 박스 자체의 견고함이 요구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동사에서는 조금 다른 디자인으로 된 차량용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물론, 스피커와 앰프 등의 사용자의 시스템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보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자사 측에서 말하는 본 제품의 효과에 따르면 우선 스피커의 해상도와 동작을 개선하고, 억제된 자연스러운 울림을 복원시켜서 실제의 사운드와 풍부한 음악성을 제공해준다고 소개하고 있다. 스피커나 앰프에 발생한 자기(magnetic effect)를 제거해서 전송률을 높이고 고충실도를 지향한 제품들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런 ‘역기전력 감쇄장치’라는 개념은 처음이다. 제조사에서 제품의 구조나 원리에 대해 밝히고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자료가 별로 없다. 다만, 제품의 무게나 원리 등으로 보아 필자가 짐작하기로는 일종의 하이패스 필터를 두어 낮은 대역에서의 잔여에너지로 작동되는 우퍼의 울림을 억제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청곡을 거듭할 수록 생겨난 느낌은 우선 몇 가지 점에서 변화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제품을 연결하고 나서의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변화는 기본적으로 전반적으로 차분해진다는 점이다.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의 무음 상태 혹은 음량이 낮거나 악기가 많지 않은 곡을 들어보면 이런 특성은 좀 더 분명해진다. 이에 따라 배경이 좀더 까맣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대가 좀더 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가디너가 지휘하는 홀스트의 <혹성> 중 ‘해왕성’을 들어보면 배경이 평소에 시청할 때 보다 확실히 적막해져 있다. 이로 인한 효과는 종종 스테이징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되는데, 스테이징의 가로 넓이가 약간 더 확장된 상태로 무대가 홀로그래픽으로 떠오르며 전체무대의 바깥쪽 윤곽이 좀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우주에 있다는 느낌을 좀더 실감나게 까만 배경 속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차임벨 소리와 희미한 보컬의 소리가 매끈하게 연마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음 자체의 마름질이라기 보다는 이 또한 노이즈가 걷힌 효과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베이스의 양감이 줄거나 하지 않은 채로 차폐트랜스를 처음 사용했을 때의 느낌처럼 배경을 떠다니는 먼지 같은 게 가라앉아 있다.

 

한편, 낮은 대역에서의 반응은 좀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청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역의 양감이나 다이나믹스 특성이 분명한 곡을 시청하면서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우퍼에 귀를 가깝게 대고 RSP501EX의 연결 전후의 변화를 비교해보았다. 기본적으로 RSP501EX는 연주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베이스 유닛이 불필요한 작동을 하지 않게 했다.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의 미세한 우퍼의 움직임은 저역에서의 허밍과 같은 원래는 없는 음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RSP501EX 를 연결한 이후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바칼로프의 <미사탱고> 도입부는 팀파니가 나타나기 전의 상황이 좀더 고요한 상태가 되자 정교하고 분명한 마이크로 다이나믹스을 들려준다. 약음으로 터치하는 팀파니의 울림이 구체적이다. 낮은 코러스의 약음이 고기떼처럼 유연하게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옥타브의 고개를 타고 넘는다. 제 4곡 ‘글로리아’ 도입부의 팀파니가 말쑥하게 빠져나온다. 밀도감이 좋아졌다고도 할 수 있고 견고한 탄력이 미세하게 증가했다고도 할 수 있는 팀파니이다.

왁스의 ‘지하철을 타고’는 다이나믹 테스트에 종종 들이대곤 하지만, 음의 배경이나 뒷처리가 고급스럽다고 할 수만은 없는, 그런 특성을 장점으로 하는 곡은 아니다. 그래서 이 곡이 어떻게 들릴까 궁금했는데, 이 곡 또한 분명한 개선효과가 있었다. 도입부의 낮은 곳까지 왕복하는 강렬한 베이스 비트는 어딘가 좀더 확장되어 내려간다는 느낌을 줄 만큼 다이나믹하게 연출된다. 전자드럼의 여운이나 이펙터에 남아있는 다소 거친 마감이 어느 정도 순화되어 있는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까지는 할 수 없으나 상당히 정제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보컬의 존재감만 해도 그렇다. 사실 왁스의 보컬은 이 곡을 리드하는 입장이 아닌 일종의 악기와 대등한 지위를 갖는데,  RSP501EX로 시청하는 보컬의 느낌은 운행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진지해져 있어서 이제부터는 주도적인 입장이 좀더 앞으로 나서고 있어 보인다. 어딘가 색채의 대비도 강해져 있으면서도 거칠지 않거나, 귀에 덜 거슬리는 고역이 되어 있다. 

바하의 'B단조 미사’ 12곡 ‘Cum Santu Spiritu’에서의 정보량이 확실히 늘어났다. 무대도 깊어지고 검은 윤곽의 연주자 사이의 간격도 좀더 밝게 확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후간 레이어링이 사실적으로 늘어서고 포커싱도 분명해진 최상의 스테이징을 보여준다. 홀 위로 올라가며 약음으로 그라데이션을 그려내는 느낌도 잘 잡힌다. 클로징에서 관악기의 뻗침도 강렬하지만 귀를 자극하지 않고 광채가 강화되는 정도로 느껴진다. 사실 동일한 시스템에서 그 이상으로 확장되기 어려운 이 곡을 정교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그리고 좀더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잠시 감탄이 일게 했다. 순도가 높은 재질들을 사용해서 컨셉트를 이해한 제작자가 좋은 의미로 필터를 사용했을 때의 상황과 일치한다.